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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가슴이 뛰는 대로 가면 돼” 운명을 사랑한 가수 김연자

김연자의 노래는 경쾌하고 단단하다. 맑으면서도 때론 거칠다. 소녀의 콧노래처럼 말랑하다가도 어느새 베테랑의 기교와 거장의 울림을 뿜어낸다. 그렇게 김연자는 무대를, 청중을 휘어잡고, 하나가 된다.


최근 그가 내놓는 곡들은 ‘경쾌발랄’하다. 전주만으로 관객은 들썩인다. 그 경쾌함 위로 흐르는 묵직한 인생관이 어우러진 김연자의 노래가 전하는 위로와 희망은 마치 ‘웃고 있지만 슬픈’ 피에로가 주는 정서와도 닮았다. 신나는 어깨춤을 따라 추다가도 곡의 클라이맥스에서 특유의 거친 고음을 낼 때면, 어느새 가사를 곱씹게 되는 이유다.


‘아모르 파티’라는 말처럼 자신의 운명을 적극적으로 사랑해 제5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이제는 ‘블링블링’한 인생을 살아가는 가수 김연자를 만났다.


박준영 기자
사진 상연기획

 

그래도 아모르 파티다
“아모르 파티 덕분에 제2의 전성기를 맞을 수 있었죠. 한국으로 돌아올 때 무일푼이나 다름없었던 저를 다시 무대 위로 올려준 노래이니 시간이 지났다고 해도 그때의 감동과 감사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김연자를 말할 때, 아모르 파티를 빼놓을 수는 없다. 이 곡이 발표된 것도, 묻힌 것도, 차트를 역주행해서 한 시절을 풍미했던 것도 이제는 과거의 일임에도 그렇다.


물론 이 곡이 그를 원조 한류스타에서 역주행의 아이콘으로, 트로트의 여왕으로 만든 곡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이 곡이 ‘가수인 나는 노래만 잘 하면 된다’고 믿어온 김연자가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관심을 두고 적극적으로 나서자고 마음먹은 시기에 자신의 ‘인생 찬가’로 삼고자 했던 곡이기 때문이다.

 


한 번의 결정이 일으킨 나비효과
“일본에서 한창 일이 잘 될 때는 하루에 1억 원씩 벌었던 적도 있었어요.

‘나는 노래만 잘 하면 된다. 나머지는 주변에서 알아서 다 해주겠지’라는 마음으로 살아왔어요. 비겁할 정도로 세상 물정을 몰랐던 거죠.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내 인생을 설계하려고요. 똑똑한 여자가 되는 게 목표인데 아직 멀었죠(웃음).”

 

알려진 대로 2012년 이혼 후 그에게 남은 건 없었다. 실제로 그가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는 무일푼이나 다름없었다. 좌절하고 무너질 법도 하건만 김연자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운명을 감수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를 오히려 긍정하고 받아들여 ‘사랑’하는 것이 인간 본연의 ‘창조성’을 키울 수 있다는 독일의 철학자 니체의 사상인 아모르 파티(Amor Fati)를 곡명으로 정한 이유다.

 

 

비운의 곡, 역주행 신화 쓰다
“저는 앞만 보고 노래만 한 가수였잖아요. 그 때문에 겪은 일들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죠. 그래도 그 일들에 후회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쓴 제목이에요. 그래서 막 곡이 나왔을 때는 가제가 ‘연자송’이었죠(웃음). ‘인생의 찬가’ 같은 곡을 부탁해서 받은 곡이라 애정이 깊었는데 ‘비운의 곡’이 됐어요.”


김연자의 곡, 아모르 파티는 2013년 발표한 곡이다. 트로트에 EDM(클럽, 페스티벌, 파티에서 사용되는 전자음악을 통칭)이라는 젊은 세대의 장르를 입힌 시도까지는 좋았지만, 결과적으로 불발에 그쳤다. 김연자가 이 곡을 ‘비운의 곡’이라고 표현한 이유다.

 


‘애인있어요’ 좋아한댔는데
“신곡 준비에 앞서 소속사에서 어떤 곡을 좋아하냐고 물었어요. 이은미 씨의 ‘애인있어요’ 같은 곡을 좋아한다고 했고요. 소속사 대표님이 신철 씨에게 얘기를 전했는데, 마침 신철 씨가 ‘애인있어요’를 작곡한 작곡가 윤일상 씨와 친분이 있었던 거예요.

 

후에 윤일상 씨를 만나 식사를 하면서 얘기를 나눴어요. 윤일상 씨가 어떤 내용의 곡을 원하는지 묻기에 ‘인생의 찬가’를 부르고 싶다고 했었죠. 그렇게 가제 ‘연자송’이라는 EDM곡이 나왔어요(웃음). 가사량도 많고, 템포가 빨라 숨이 가빠서 ‘이 곡을 소화할 수 있을까’ 싶었죠.”

 

실제로 김연자는 ‘곡이 낯설어서 전주나 간주를 듣다 노래를 부를 타이밍을 잃기 일쑤였다’며 후일담을 밝혔다. 역주행 후에도 “트로트와 다르게 EDM은 ‘거기가 거기’ 같아서 들어가는 마디를 잡기가 나한테는 너무 어렵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김연자가 아모르 파티를 공연할 때 유심히 보면 원곡과는 다르게 박자를 묘하게 탄다”거나 “전주가 나올 때 꽤 많은 경우 손가락으로 마디를 세고 있다”는 팬들의 분석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 번도 안 부른 장르에 도전하다
후문에 따르면 작곡가 윤일상이 김연자의 곡을 작곡하기 위해 그간 발표된 곡들을 살펴봤더니 ‘EDM만 빼고 다른 장르는 다 했더라’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윤일상은 김연자가 한 번도 부르지 않은 EDM 장르로 곡을 쓰기로 했다. 김연자에게도 큰 도전이었다. 그러나 이 도전은 대중에게도 업계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김연자는 “트로트 가수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어 아모르 파티를 불렀는데 오히려 대중과 멀어진 느낌이었다. 노래를 들은 어르신들은 ‘도대체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1절이냐’, ‘따라 부르기 버겁다’라며 불만을 표하셨다”고 말했다.

 

공연장에서 노래를 불러도 별 반응이 없었다. ‘젊은 세대의 노래 같다’는 이유로 전국노래자랑이나 가요무대 같은 프로그램 섭외도 잘 들어오지 않았다. 아모르 파티는 그렇게 묻힌 곡이 됐다. 자신의 ‘인생의 찬가’를 청해 받은 곡이었고, 새로운 도전이었기에 아쉬움이 없을 수는 없었다.

 


역주행을 일으킨 나비효과의 시작
“어느 날 ‘열린음악회’에서 아모르 파티로 공연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어요. 제 첫 반응은 ‘어머, 저 그 노래 다 잊어버렸어요!’였죠(웃음). 이미 4년 전의 곡이었으니까요. 그 당시 활동하던 신곡을 부르겠다고도 했지만, 제작진에서는 꼭 아모르 파티로 공연해달라고 했어요.”


당시 열린음악회 PD는 ‘왜 이 좋은 노래를 부르지 않을까’ 의아해했다고 한다. 그래서 더 강하게 요청했던 것. 내키지 않았지만, 김연자는 4년 만에 이 곡을 다시 꺼내기로 했다. 2016년의 일이다. 그렇게 KBS 열린음악회(2016년 7월 10일 방영분)에서 아이돌 그룹 엑소의 다음 순서로 김연자가 비운의 곡, 아모르 파티를 들고 무대에 올랐다.

 


‘제발 이 노래를 40초만 들어주세요’
이때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생긴다. 마침 그 자리에 있던 아이돌 그룹 ‘엑소’의 팬들이 엑소 무대 후 이 노래를 듣고 흥에 겨워 ‘인생곡’이라며 SNS를 통해 아모르 파티 추천에 나섰다는 것이다. 다음은 당시 김연자의 곡 홍보에 나선 엑소 팬의 실제 SNS 게시물 전문으로 알려진 내용이다.


‘잠깐만 님들. 제발 이 노래를 40초만 들어주세요. 진짜 딱 40초만요. 이 노래 살려야 한다. 우리는 백세인생도 살려낸 인간들이잖아. 모두 이 갓곡(God과 곡의 합성어, 명곡이라는 의미)을 들어줘. 인생 노래 듣는 데 드는 40초를 아까워 마세요.’


이 게시물에는 당시 아모르 파티 무대 영상이 첨부돼 있었고, 이 영상은 트위터에서만 1만 회 이상 공유가 됐다. 이후 이 곡은 ‘수능 금지곡 1위’, ‘10대가 감명받은 곡’, ‘제5의 전성기’와 같은 수식어를 만들어냈다.


“도전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나요.”
그런데 사실 이 트윗은 해당 공연을 한 지 1년이 지난, 2017년 3월에 작성된 게시물이다. 그래서 ‘당시 공연을 관람했던 엑소 팬들이 엑소 무대 후 미처 퇴장하지 못한 채 이 곡을 듣게 돼 SNS 등을 통해 홍보했다는 에피소드는 와전일 것이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정확한 이유가 뭐건 결과적으로 아모르 파티는 다시 세상에 나왔고, 명실상부 ‘김연자의 인생 찬가’가 됐다.


잘 하는 것 대신 안 해본 걸 찾은 작곡가, 그걸 소화하려고 부단히 애쓴 가수, 이미 묻힌 곡을 다시 공연하는 걸 묵묵히 밀어준 소속사 모두가 ‘도전’한 결과다. 이에 대해 김연자는 “도전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 있나. 하물며 점심 메뉴를 고르는 일도 도전이 아닌가”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그러나 역시 이 일련의 스토리는 ‘도전’이 아니었다면 만들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시니어 여러분도 역주행합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마음이 진정 원하는 일을 찾자. 머리가 아닌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자. 누구나 알지만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죠. 저 역시도 그래요. 하기 어려우니까 노랫말로 써서 더욱 목이 터져라 부릅니다. 시니어 여러분의 미래도 ‘역주행’하시기를 바라면서요.”
특히 음원 시장에서 ‘역주행’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미 오래전 발표한 곡이 뒤늦게 대중의 관심을 받으면서 폭발적으로 차트 상단까지 거슬러 오르는 모습을 역주행에 빗댄 표현이다.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가슴이 뛰는 대로 가면 돼.’ 아모르 파티 가사 일부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누군가에게 듣고 싶고,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블링블링한 시니어를 위해
“‘뭐든 생각하기 나름이지. 행복은 많이많이, 사랑도 많이많이, 이렇게 오늘도 블링블링’이라는 가사가 있어요. 운명을 수긍하고 기다리지만 말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하시면 좋겠어요. 그렇게 행복과 사랑을 찾는 시니어들이 늘어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합니다.”


김연자는 오는 12월 4일(대구)과 18일(광주) 라이브 콘서트를 끝으로 2021년의 공식 일정을 마무리한다. 김연자는 ‘노래 말고 다른 일에도 나서겠다’지만 역시 그에게 기대하는 건 그의 노래가 전하는 위로고 용기이며, 희망과 의욕인 건 어쩔 수 없다.

 

김연자가 ‘블링블링’한 시니어를 대변하려 하는 이유기도 하다.